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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빛나는 한국의 밤을 만들어 준 사람

by 와이제이코코 2024.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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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빛나는 남한의 밤, 검게 물든 북한의 밤

 

같은 한반도이지만 한국과 북한의 극과 극이라고 부를 만큼 다른 점 바로 한국과 북한의 밤입니다.

우주에서 찍은 한반도의 밤은 믿기 힘들 정도로 암흑인 북한과 환하게 빛나는 한국의 사진이 화제였습니다.

북한은 밤을 밝힐 전기가 없어 밤마다 암흑에 갇힐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전기가 부족한 현상을 '전력난'이라고 합니다.

 

가난하고 암흑이었던 우리나라

 

과거 우리나라도 지금의 북한처럼 심각한 전력난을 겪었습니다.

1948년 5월 14일 북한이 갑자기 남한으로 보내주던 송전을 끊어버리면서 우리나라는 암흑이 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사용하던 전기의 70%를 북한에서 공급받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체적으로 전력난을 해결하기에는 너무 가난했고 기술도 부족했습니다.

산업기반이 약했던 당시에는 전력난으로 제조업조차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밤을 빛나게 해 준 사람

암흑에 갇혀있던 우리 한국을 환하게 밝혀준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고) 한만춘 박사님입니다.

1943년 경성제국대학 전기공학부 1회로 졸업하고 조선전업에 취업하게 된 한만춘 박사님.

조선전업에서 근무하던 중 갑자기 북한이 송전을 끊어버려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이 고난 덕분(?)에 한만춘 박사님은 반드시 한국의 전력난을 해결하겠다고 각성하게 됩니다.

 

전기공학 기초를 배우기 위해 1948년 회사를 나와 서울대학교 조교수로 들어가 전기 연구 및 교육에 매진하게 됩니다.

1955년 연세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초대 공학부장, 산업기술연구소장 등을 지내며 수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당시 우리말로 된 교재가 없었기 때문에 외국의 교재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 외국어부터 마스터해야만 했고 시간과 언어 때문에 결국 학문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만춘 박사님은 교류회로, 배전공학, 송전공학, 박전공학, 자동제어이론, 전기통론연습, 등 직접 저서를 출간해 후학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1958년 한국 최초 원자력 국비유학생으로 영국 노팅엄 대학에서 유학을 하고 1961년 원자로 제어분야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대한민국 전기공학 박사 1호가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돌아오자마자 한만춘 박사님은 자신이 배워온 것들을 한국에 쏟아 붓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최초아날로그 컴퓨터를 설계하고 제작했습니다. 이때 탄생한 것이 연세 101 아날로그 전자계산기입니다.

이전에는 수식에만 의존했으나 연세 101의 탄생으로 방대하고 복잡한 계산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전력 계통 안정도 개선 및 제어기 개발 등 수많은 연구에 쓰이면서 한국 전기전자공학의 수준을 높이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연세 101 아날로그 전자계산기'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557호로 등록되었습니다.

 

1970년이 되어도 여전히 전력난은 이어졌고 특히 시외로 넘어갈수록 전력 공급이 원활하게 되지 않아 상당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들처럼 110V의 낮은 배전전압을 사용했었습니다. 110V에는 막대한 배전손실이 발생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습니다. 1961년 당시 송배전 손실은 약 30%로 발전 용량이 367,000kw였는데 110,000kw가 이동 중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만 막아도 훨씬 더 많은 전기를 전국에 공급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된 한만춘 박사님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220v/380v로 승압하는 정책 근거를 제공하면서 전력 계통을 확충하게 됩니다. 전압을 두배로 올리면 소비되는 전류가 절반으로 줄어들고 전선에서 낭비되는 전기도 줄기 때문에 효율이 월등하게 좋아집니다. 가정, 공장 등 전국에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경제 효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1973년부터 시작한 배전 승압 사업은 32년이 지난 2005년이 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송배전손실률을 달성하게 되면서 오랜 시간이 걸린 사업이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결과물이었습니다.

송배전손실률 11.38%에서 4.46%로 급감했습니다.

미국 7%, 영국 8.7%, 프랑스 6.8% 등 선진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가 월등한 수준입니다.

한국이 220v 도입을 성공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비결은

1970년대 농어촌부터 220v를 도입했고 그때부터 전력공급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당시 농어촌에는 전기시설이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 점이 오히려 기회가 된 것입니다.

이미 110v가 정착된 상태라면 바꾸는 작업이 정말 힘들었을 것입니다.

농어촌에는 전기를 공급해 주는 것만 해도 좋은 일이었기에 반대 없이 사업이 잘 진행되었고 도시 쪽에 110v에서 220v로 바꾸는 사업이 진행될 때는 이미 사용 중인 전기기구들이 모두 110v 제품이었기 때문에 다소 불평이 나왔었지만 끝까지 밀어붙인 결과 한국은 전력 선진국에 등극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전기공학한만춘박사님=ALT

한국의 전력산업의 기반이 되어주신 한만춘 박사님은 안타깝게도 전력 사업이 마무리되기 전인 1984년 63세의 나이에 타계하셨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밤이 밝게 빛날 수 있는 것은 한만춘 박사님의 연구와 노력 덕분이라는 것을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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